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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찬선교사님 선교사역에 관한 신문기사들

  • 작성자 : Webmaster
  • 조회 : 2,185
  • 10-12-05 05:53

1. 2010년 8월 10일자 기독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교육사역은 언제나 강하다”
인터뷰/ 탄자니아 안명찬 선교사
 2010년 08월 10일 (화) 13:42:45 박민균 기자min@kidok.com

‘컴패션스쿨’ 성경 인성교육 절대적 호응 얻어

안명찬 선교사는 이제 막 파송을 받은 신임 선교사와 같이 열정적으로 사역 이야기를 쏟아냈다. 1993년 파송을 받아 17년째 사역하고 있는 시니어 선교사지만, 젊을 때보다 더욱 열심히 사역한다고 말한다. 안 선교사를 열정으로 이끈 것은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사역이었다.

안명찬 선교사는 1993년 탄자니아로 파송을 받은 후, 총회세계선교회 소속 선교사들과 함께 칼빈신학교 교수 사역 및 교회개척사역을 펼쳤다. 1996년 도도마장로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차둘레와장로교회 모시안디옥장로교회 부가장로교회 코로스웨장로교회 등을 개척하고 설립했다.

안 선교사의 사역이 교회개척에서 교육으로 전환된 계기는 2008년 컴패션스쿨을 만나면서. 컴패션스쿨은 미국 콜로라도에 본부를 둔 국제컴패션이 가난한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교육프로그램이다. 안 선교사는 컴패션이 탄자니아에서 사역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시안디옥장로교회에서 컴패션스쿨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컴패션스쿨이 시작되자 탄자니아 국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가난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전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죠. 또한 컴패션은 교회를 중심으로 학교사역을 하도록 규정해 놓아서 마음 놓고 선교와 교육을 접목시킬 수 있었습니다.”

컴패션스쿨은 매주 토요일 아이들에게 성경교육과 인성교육 등을 가르치는 주말학교이다. 컴패션은 이 학교에 등록을 하고 충실하게 다니면, 그 학생이 정규교육을 받기 위해 필요한 학비와 교복 교육자재 등을 모두 무상으로 제공한다. 주중에는 정규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주말에는 컴패션스쿨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도록 한 것이다.

다만 컴패션스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실 3칸과 사무실 화장실 등을 갖춘 건물이 필요하고, 중복 사역을 피하기 위해 학교 주변으로 3킬로미터 내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도록 했다.

모시안디옥컴패션스쿨은 2009년 11월 건물 공사를 시작해 컴패션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2010년 6월 정식 시설로 합격승인을 받았다. 6만 달러에 이르는 건축비 마련이 쉽지 않아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생활비와 자녀학비까지 모두 건축비로 헌금한 안 선교사의 열정과 한국과 미국에서 후원하는 성도들의 헌신으로 무사히 건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안명찬 선교사는 부가장로교회와 코로스웨장로교회에도 컴패션스쿨을 설립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학교 한 곳당 건축비가 7만 달러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시안디옥컴패션스쿨 설립이 힘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경험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컴패션스쿨 사역으로 선교는 믿음과 무릎으로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체험했습니다.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계속 이 사역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2. 2010년 11월 9일자 미주중앙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안명찬 선교사
오지를 택한 선교사들은 왜 하필 거기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답변이 같다. 17년째 탄자니아에서 사역중인 안명찬(53) 선교사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고생길을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안 선교사는 지난 93년 총회세계선교회(GMS)를 통해 파송돼 탄자니아의 \'도도마\'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오지인 선교지에서의 생활을 그는 \"신석기 시대\'에 사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식수난과 생필품 부족 풍토병은 일상이었다. 안 선교사는 \"큰 딸이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에 시달릴 때도 아내가 아파 움직이지 못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전했다.

9.11 테러 후 투옥되기도 했다. 사역지를 벗어나 선교를 한다는 이유로 이민성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안 선교사는 \"양말과 신발이 벗겨진 채 끌려가던 당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며 \"지하 감옥 시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던 한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그가 만든 교회가 4개 들어섰고 올해 5월에는 미국 컴패션 후원을 받아 학교도 설립했다.

안 선교사는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으라면 내 어눌한 스와힐리어 설교에 현지인들이 감동할 때였다\"며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보람은 모든 어려움을 뒤로 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안식년 기간으로 잠시 아프리카를 떠나 LA에 머물고 있다. ▶도움 주실 분:philmcahn@gmail.com
11/9/2010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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